진인사대천명 盡人事待天命 ? 하지만 사람은 할 일이 너무 많아서 하늘의 명을 기다릴 수 없다.
子祀자사, 子輿자여, 子犁자려, 子來자래 네 사람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렇게 말했다.
“누가 無무를 머리로 삼고 生생을 등뼈로 삼고 死사를 꽁무니로 삼을 수 있는가?
누가 生생과 死사, 存존과 亡망이 한 몸임을 아는가?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와 사귀고 싶다.”
그리고는 네 사람이 서로 쳐다보면서 빙그레 웃고 마음에 거슬리는 것이 없자 마침내 서로 더불어 벗이 되었다.
얼마 있다가 자여가 병에 걸리자, 자사가 가서 병의 차도를 물으면서 말했다.
“기이하구나!
조물자가 그대를 이처럼 구부러지게 하였구나.”
구부러진 곱사등이 등에 생겨 오장이 위에 붙고, 턱은 배꼽 아래에 숨고, 어깨는 이마보다도 높고, 상투는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데, 음양의 氣가 조화를 잃어버렸는데도 그 마음은 한가로워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았다.
자여가 비틀비틀 걸어가 우물에 자기 모습을 비춰보고는 말했다.
“아아!
저 조물자여, 거듭 나를 이처럼 구부러지게 하는구나.”
자사가 말했다.
“그대는 그것이 싫은가?”
자여가 말했다.
“아니다.
내가 무엇을 싫어하겠는가.
가령 나의 왼쪽 팔뚝을 서서히 변화시켜서 닭이 되게 한다면, 나는 그것을 따라 새벽을 알리는 울음을 내게 할 것이고, 가령 나의 오른쪽 팔뚝을 서서히 변화시켜서 탄환이 되게 한다면 나는 그것을 따라 새구이를 구할 것이며, 가령 나의 궁둥이를 변화시켜서 수레바퀴가 되게 하고 나의 정신을 말[馬]이 되게 한다면, 나는 그것을 따라 수레를 탈 것이니 어찌 따로 수레에 멍에하겠는가.
게다가 생명을 얻는 것도 때를 따르는 것이며, 생명을 잃는 것도 때를 따르는 것이니, 태어나는 때를 편안히 맞이하고 죽는 때를 순하게 따르면 슬픔이나 즐거움 따위의 감정이 나의 마음에 들어올 수 없다.
이것이 옛날의 이른바 ‘거꾸로 매달렸다가 풀려났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스스로 풀려나지 못하는 것은, 사물이 그것을 묶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또 사물이 天(自然)을 이기지 못한 지 오래되었는데 내가 또 무엇을 싫어하겠는가.”
또 얼마 있다가 子來가 병에 걸려 헐떡거리면서 막 죽게 되자 그 아내와 자식들이 빙 둘러싸고 울고 있었는데, 子犁가 가서 위문하고 이렇게 말했다.
“쉿! 저리들 비키시오!
이 엄숙한 변화의 작용을 방해하지 마시오.”
자리가 문에 기대어 자래에게 말했다.
“기이하구나!
조화여.
또 그대를 무엇으로 만들려 하며, 그대를 어디로 데려가려고 하는가.
그대를 쥐의 간으로 만들 것인가.
그대를 벌레의 다리로 만들 것인가.”
자래가 말했다.
“부모란 자식에게 동서남북 어디로 가게 하든 오직 명령을 따라야 하는 존재이다.
陰陽음양은 사람에게 단지 부모와 같을 뿐만이 아니다.
저 음양이 나를 죽음에 가까이 가게 하는데, 만약 내가 따르지 않는다면 나만 버릇없는 자가 될 뿐이니 저 음양에 무슨 죄가 있겠는가.”
대자연은 肉體육체를 주어 나를 이 세상에 살게 하며, 삶을 주어 나를 수고롭게 하며, 늙음으로 나를 편안하게 해주며, 죽음으로 나를 쉬게 한다.
그 때문에 나의 삶을 좋은 것으로 여기는 것은 바로 나의 죽음을 좋은 것으로 여기기 위한 것이다.
지금 대장장이가 쇠붙이를 녹여서 주물을 만드는데, 쇠붙이가 뛰어 올라와 ‘나는 장차 반드시 막야와 같은 名劍명검이 되겠다’고 말한다면, 대장장이는 반드시 상서롭지 못한 쇠붙이라고 여길 것이다.
이제 한 번 인간의 형체를 훔쳐서 세상에 태어나 “나는 언제까지나 오직 사람으로만 살겠다.”고 말한다면, 저 造化者조화자도 반드시 상서롭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니,
지금 한 번 천지를 커다란 용광로로 삼고, 조화를 대장장이로 삼았으니, 어디로 가서 무엇이 된들 좋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