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장자 胠篋 거협 2장 도둑질하는 데도 도가 있습니까
최 샘
2023. 2. 25. 07:16
장자 胠篋 거협 2장 도둑질하는 데도 도가 있습니까
시험 삼아 이에 대해 따져 보고자 한다.
세속에서 이른바 최고의 지혜라고 하는 것이 큰 도둑을 도와주지 않은 것이 있으며 이른바 지고의 성인이 큰 도둑을 위해 지켜 주지 않은 것이 있는가.
어떻게 그러함을 알 수 있는가.
옛적에 關龍逢(관롱봉)은 〈桀王(걸왕)에게 간하다가〉 斬殺(참살)되었고, 比干(비간)은 〈紂王(주왕)에게 간하다가〉 가슴을 찢겨 죽음을 당했으며, 萇弘(장홍)은 〈靈王(령왕)에게 간하다가〉 창자가 끊겨 죽음을 당했으며, 伍子胥(오자서)는 〈夫差(부차)에게 간하다가〉 시신이 물속에서 썩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네 사람의 현명함으로도 몸이 刑戮(형륙)을 면치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盜跖(도척)의 무리 중 한 사람이 도척에게 이렇게 물었다.
“도둑질하는 데도 도가 있습니까?”
도척은 이렇게 대답했다.
“어디엔들 도가 없겠느냐?
방 속에 감추어진 재화를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 짐작할 줄 아는 것이 聖(성)이고, 도둑질할 때 먼저 들어가는 것이 勇(용)이고, 맨 뒤에 나오는 것이 義(의)이고, 도둑질이 가능할지 여부를 미리 아는 것이 知(지)이고, 도둑질한 물건을 고루 분배하는 것이 仁(인)이다.
이 다섯 가지를 갖추지 않고 큰 도둑이 된 자는 천하에 아직 없다.”
이로 말미암아 살펴보건대 착한 사람이 聖人(성인)의 도를 얻지 못하면 자신의 善(선)을 이룰 수 없지만 도척 같은 도둑도 성인의 도를 얻지 못하면 도둑질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천하에는 착한 사람이 적고 착하지 않은 사람이 많으니 성인이 천하를 이롭게 하는 것은 적고 천하를 해롭게 하는 것은 많다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린 것처럼 魯(노)나라에서 담근 술이 시원찮자 趙(조)나라의 邯鄲(감단)이 포위되고 성인이 나타나자 큰 도둑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러므로 성인을 배격하고 도둑들을 내버려 두어야 천하가 비로소 다스려질 것이다.
냇물이 마르면 골짜기가 비고, 언덕이 무너지면 깊은 연못이 메워진다.
성인이 죽고 나면 큰 도둑이 일어나지 않아서 천하가 다스려져서 변고가 없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