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성인이 거듭 나타나 천하를 다스린다 해도 이는 盜跖(도척) 같은 도둑을 거듭 이롭게 해 주는 일일 뿐이다.
〈성인이 천하를 다스리기 위해〉 됫박을 만들어 곡식의 양을 헤아리면 도둑은 됫박까지 아울러 훔치고, 저울을 만들어 무게를 재면 저울까지 아울러 훔치고, 符璽(부새)를 만들어 신표로 삼으면 부새까지 아울러 훔치고, 인의를 만들어 바로잡으려 하면 인의까지 아울러 훔친다.
어떻게 그러함을 알 수 있는가.
혁대 고리를 훔친 자는 죽임을 당하지만 나라를 훔친 자는 제후가 된다.
제후들의 문에는 인의가 있으니 그렇다면 仁義(인의)와 聖知(성지)까지 훔친 것이 아니겠는가.
그 때문에 큰 도둑이라는 惡名(아명)을 떨쳐 버리고 제후라는 이름을 내세워 인의를 훔치고 됫박과 저울, 부새의 이로움까지도 아울러 훔치는 자들이란 높은 관직으로 보상을 해 줘도 선을 권장할 수 없고 도끼의 위협이 있다 하더라도 도둑질을 금지할 수 없다.
이는 도척 같은 도둑을 거듭 이롭게 해서 금지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성인의 잘못이다.
그래서 물고기는 깊은 물 속에서 벗어나서는 안 되고 나라의 이로운 기물은 사람들에게 보여 주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성인이라는 존재는 천하를 다스리는 利器(이기)인지라 천하에 밝게 드러낼 것이 아니다.
그 때문에 聖(성)과 知(지)를 끊어 버려야 큰 도둑이 그칠 것이며, 보옥을 던져 버리고 구슬을 부숴 버려야 작은 도둑들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부새를 깨 버려야 백성들이 소박함을 회복하며, 됫박을 부수고 저울을 분질러 버려야 백성들이 다투지 않을 것이며, 천하의 聖法(성법)을 없애 버려야 백성들이 비로소 의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六律(륙률)의 가락을 흩뜨려 버리고 악기를 태워 버리고 師曠(사광)의 귀를 막아 버려야만 천하에 비로소 사람들이 밝은 귀를 간직하게 될 것이며, 화려한 무늬를 없애고 다섯 가지 채색을 흩어 버리고 離朱(리주)의 눈을 갖풀로 붙여 버려야만 비로소 천하 사람들이 밝은 눈을 간직하게 될 것이며, 갈고리를 부수고 먹줄을 끊어 버리고 그림쇠와 곱자를 버리고 工倕(공수)의 손가락을 꺾어 버려야만 비로소 천하 사람들이 기술을 간직하게 될 것이다.
그 때문에 큰 기술은 마치 졸렬한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曾參(증삼)과 史鰌(사추)의 행실을 깎아 버리고 楊朱(양주)와 墨翟(묵적)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인의를 물리쳐 버리면 천하의 덕이 비로소 하나가 될 것이다.
천하의 사람들이 본래의 밝은 눈을 간직하게 되면 천하가 녹아 버리지 않을 것이고 천하의 사람들이 본래의 밝은 귀를 간직하게 되면 천하가 얽매이지 않을 것이고 천하의 사람들이 본래의 지혜를 간직하게 되면 천하가 미혹되지 않을 것이고 천하의 사람들이 본래의 덕을 간직하게 되면 천하가 치우치지 않게 될 것이다.
저 증삼과 사추, 양주와 묵적, 사광과 공수, 이주 같은 자들은 모두 밖으로 자신의 덕을 세워서 천하를 어지럽히는 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