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제물론 제1장 만물제동 

God(物) is always with you.

南郭子綦남곽자기가 팔뚝을 안석에 기대고 앉아서, 하늘을 우러러보며 길게 한숨을 쉬는데, 멍하니 몸이 해체된 듯이 자기 짝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顔成子游안성자유가 앞에서 모시고 서 있다가 말했다.

어쩐 일이십니까? 육체는 진실로 시든 나무와 같아질 수 있으며 마음은 진실로 불꺼진 재와 같아질 수 있는 것입니까?

지금 안석에 기대고 계신 모습은 이전에 책상에 기대 계시던 모습이 아니십니다.”

子綦자기가 이렇게 대답했다.

언아, 너의 질문이 참으로 훌륭하구나.

지금 나는 나 자신을 잃어버렸는데, 너는 그것을 알고 있는가!

너는 人籟인뢰는 들었어도 아직 地籟지뢰는 듣지 못했을 것이며 지뢰는 들었어도 아직 天籟천뢰는 듣지 못했을 것이다.”

子游자유가 이렇게 물었다.

감히 그 방법에 대해 묻겠습니다.”

子綦자기가 대답했다.

대지가 숨을 내쉬면 그것을 일러 바람이라고 한다.

이것은 일어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일단 일어나면 온갖 구멍이 소리를 낸다.

너만 유독 윙윙울리는 바람 소리를 듣지 못했는가.

험하고 높은 산림 속에서 둘레가 백 아름이 넘는 큰 나무의 구멍은, 어떤 것은 콧구멍 같고, 입 같고, 귀 같고, 기둥 받치는 가로 지른 나무 같고, 나무 그릇 같고, 절구통 같고, 깊은 웅덩이 같은 것, 얕은 웅덩이 같은 것이 있는데, 거기서 나는 바람 소리는 물 부딪치는 듯한 급격한 소리, 씽씽거리며 화살 날으는 것처럼 높은 소리, 꾸짖는 듯 질타하는 소리, ‘헉헉들이마시는 것 같은 소리, 외치는 소리, 볼멘 듯한 소리, 웃는 듯한 소리, 귀여운 소리이다.

그런데 앞의 바람이 웅웅 불어대면 뒤의 바람이 따라서 윙윙 소리를 낸다.

산들바람이 불면 가볍게 화답하고, 거센 회오리바람이 불면 크게 화답을 하는데, 만일 크고 매운 바람이 그치면 곧 모든 구멍들이 텅 비어서 고요해진다.

너만 유독 바람이 지나간 뒤에 나뭇가지들이흔들흔들거리고 살랑살랑거리는 모습을 보지 못했는가.”

자유가 이렇게 말했다.

地籟지뢰는 곧 여러 구멍에서 나온 소리가 바로 이에 해당하고, 人籟인뢰는 比竹비죽 같은 악기에서 나온 소리가 바로 이에 해당하는 줄 알겠습니다만 감히 天籟천뢰란 무엇인지 묻겠습니다.”

자기가 이렇게 대답했다.

무릇 불어대는 소리가 일만 가지로 같지 않지만 그 소리는 그 자신의 구멍으로부터 말미암는 것인데 모두가 다 그 스스로 취하는 것이니, 그렇다면 그 구멍으로 하여금힘찬 소리를 내게 하는 것은 그 누구인가.”

大知대지는 한가하고 너그럽지만 小知소지는 사소한 일이나 또박또박 따지며, 大言대언은 담담하여 是非시비에 구애받지 않지만 小言소언은 수다스럽기만 하다.

세속적인 인간은잠들어서도 꿈을 꾸어 마음이 쉴 사이가 없고, 깨어나서는 신체가 外界외계의 욕망을 받아들여 사물과 접촉해서 분쟁을 일으켜 날마다 마음 속에서 싸운다.

이같은 자기 주장의 阿鼻叫喚아비규환과 자기상실의 신음 소리는어떤 경우는 너그럽게 마음 쓰고, 어떤 경우는 심각하게 마음 쓰며, 어떤 경우는 세밀하게 마음을 써서 결국은깜짝깜짝 놀라는 작은 두려움이 아니면 생기 잃은 큰 두려움이 되고 만다.

활틀에 건 화살과 같이 모질게튕겨나가는 것은 是非시비를 따져대는 것을 말함이고, 盟誓맹세한 사람처럼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자기의 승리를 지켜나가려는 끈덕진고집을 말함이고, 가을과 겨울에 낙엽 떨어지듯 衰退쇠퇴해 가는 것은 날로 消滅소멸해 감을 말함이니 이처럼 세속에 빠져버린 행위는 돌이키게 할 수 없다.

마음을 封緘봉함한 것처럼 덮어버리는 것은 늙어서 욕심이 넘침을 말함이니 죽음에 가까이 간 마음인지라 다시 살아나게 할 수가 없다.

희노애락과 려탄변집과 요일계태하는 마음의 작용은 음악 소리가 피리구멍[]에서 나오고 수증기가 버섯을 성장시키는 것과 같다.

이런 감정의 변화가밤낮으로 서로 교대하며 앞에 나타나는데도 그 감정이 일어나는 근거[萌]를 알지 못하니 그만둘지어다.

그만둘지어다.

아침 저녁으로 이것을 얻으니, 이처럼 저절로 생기는 것이감정의 변화가 말미암아 생기는 원인일 것이다.

저것이 아니면 나라는 주체를 확인할 수 없고, 내가 아니면 喜怒哀樂희노애락의 감정이 나타날 수 있는 주체가 없어진다.

이같은 견해는 진실에 가깝지만 그렇게 하도록 시키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참다운 主宰者주재자가 있는 것 같지만 그 조짐을 알 수 없으며, 작용으로서의 존재 가능성은 아주 분명하지만 그 形體형체는 볼 수 없으니 작용의 진실성[情]은 있으나 그 구체적 증거[形]는 없다.

인간의 몸에도1백 개의 뼈마디와 아홉 개의 구멍과 여섯 개의 臟腑장부를 갖추고 있는데 나는 그중 어느 것과 가장 가까운가.

그대(子遊)는 그것들 모두를 사랑할 것인가.

아니면그중 어느 하나만을 사사로이 사랑할 것인가.

이와 같다면(만약 신체의 어느 하나가 전체의 지배자가 될 수 없다면) 그것들 모두를 臣妾신첩으로 삼을 것인가?

신첩은 서로 다스리기에는 부족한가?

차례대로 돌아가면서 서로 군주가 되고 신첩이 될 수도 있는가?

아니면 어디엔가 참다운 지배자[眞君]가 존재하는 것인가?

그 실상[]을 알든 모르든 간에 그것은 참다운 진실[]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사람은한번 百骸백해九竅구규六藏육장을 갖춘[成形]을 받으면 곧장 죽지는 않더라도 소진되기를 기다리는 것인데 공연히 사물과 더불어 서로 다투어서 소진시키는 것이 말달리는 것과 같아서 멈추게 하지 못하니 또한 슬프지 아니한가?

一生을 악착같이 수고하면서도 그 成功은 기약하지 못하고 고달프게 고생하면서도 돌아가 쉴 곳(죽음)을 알지 못하니 또한 애처롭지 아니한가.

어떤 사람은 사람은 죽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그 육체가 죽어서 다른 事物사물로 변하면 그 마음도 육체와 더불어 그렇게 될 것이니 큰 슬픔이라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人生이란 참으로 이처럼 어두운 것인가.

아니면 나만 홀로 어둡고 남들은 어둡지 않은 사람이 있는 것인가.

成心성심을 따라 그것을 스승으로 삼으면 누군들 유독 스승이 없겠는가.

어찌 반드시 生成變化생성변화의 理法리법()을 알아서 마음에 스스로 깨닫는 자라야만 이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어리석은 사람도 함께 이것[成心]을 가지고 있다.

만약 마음에 아직 成心이 생기지 않았는데 是非를 따진다면 이는 오늘 월나라에 갔는데 어제 도착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없는 것을 있다고 하는 것이다.

만약 없는 것을 있다고 한다면, 비록 神妙신묘한 지혜를 발휘했던 우임금이라도 알 수 없을 것이니, 난들 유독 이를 어찌할 것인가.

사람의 말은 바람 소리가 아니다.

말에는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유독 확정할 수 없다면 과연 말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일찍이 말이 있지 않은 것인가.

사람의 말은막 태어난 새끼 병아리의 무의미한울음소리와 다르다고 하지만 그 또한 구별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구별이 없는 것인가.

참된 는 어디에 숨었기에 이처럼 위가 있게 되었으며 참된 말은 어디에 숨었기에 이처럼 로 갈리게 되었는가.

참된 는 어디에 간들 있지 않을 것이며, 참된 말은 어디에 있은들 옳지 않겠는가.

는 작은 성취 때문에 숨어버렸고, 참된 말은 화려한 꾸밈 때문에 숨어버렸다.

그 때문에 유와 묵의 是非시비가 생겨나게 되어 相對學派상대학파가 그르다고 하는 것을 옳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상대학파가 옳다고 하는 것을 그른 것이라고 주장한다.

상대가 그르다고 하는 것을 옳은 것이라 하고 상대가 옳다고 하는 것을 그른 것이라고 주장하려면 明晳명석한 認識인식()을 통해서 판단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모든 존재[]는 저것[] 아닌 것이 없으며 모든 존재는 이것[] 아닌 것이 없다.

피의 입장에서는 보이지 않고 스스로를 알려고 하면 그것(상대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에서 나오고 는 또한 에 말미암는다.’고 말한다.

이것이가 상호 간에 성립한다는 주장이다.

비록 그렇지만 나란히 하고 나란히 하고 나란히 하고 나란히 하고, 나란히 가하고 나란히 不可불가하며 나란히 不可하고 나란히 하여 시에 말미암고 비에 말미암으며 에 말미암고 에 말미암는다는 주장(彼是피시의 상대성에 대한 지적)으로 끝나고 만다.

그래서 聖人惠施혜시의 彼是方生따르지 않고 시비에 대한 판단을자연[]에 비추어 본다.

이것이 또한 상대적인 가 아닌 절대적인에 말미암는 것이다.

이처럼 區分無化된 상태에서는또한 가 될 수 있으며 또한 가 될 수 있으므로 도 또한 是非가 하나로 無化된 것이며 차도 또한 是非가 하나로 無化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의 구분이 있는 것인가.

과연 의 구별이 없는 것인가.

가 상대를 얻지 못하는 것을 의 지도리[道樞도추]’라고 한다.

지도리가 비로소 고리 가운데의 효용을 얻게 되면 무궁한 변화에 대응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도 또한 하나의 無窮이고 도 또한 하나의 무궁이다.

그래서 明晳명석한 認識인식()으로 판단하는 것이 최상이라고 말한 것이다.

손가락을 가지고 손가락이 손가락 아님을 밝히는 것은 손가락 아닌 것을 가지고 손가락이 손가락 아님을 밝히는 것만 못하고, 말[馬]을 가지고 말이 말 아님을 밝히는 것은 말이 아닌 것을 가지고 말이 말 아님을 밝히는 것만 못하다.

天地도 한 개의 손가락이고, 萬物도 한 마리의 말이다.

그런데 세속의 사람들은나에게 可한 것을 可하다고 하고, 나에게 不可한 것을 不可라 고집한다.

길은 사람이 걸어다녀서 만들어지고 은 사람들이 불러서 그렇게 이름 붙여지게 된 것이다.

무엇을 근거로 그렇다고 하는가.

습관과 편견이그렇다고 하는 데서 그렇다고 하는 것이며, 무엇을 근거로 그렇지 않다고 하는가.

습관과 편견이그렇지 않다고 하는 데서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萬物齊同의 커다란 肯定긍정의 세계에서는모든 은 진실로 그러한 바가 있으며 모든 한 바가 있으니 어떤 이든 그렇지 않는 바가 없으며 어떤 이든 하지 않는 바가 없다.

그 때문에 이를 위해서 풀줄기[]와 큰기둥[], 문둥이[]西施서시[]를 들어서 세상의 온갖 이상한 것들에 이르기까지 해서 하나가 되게 한다.

하나인 分裂분열하면 상대세계의 事物成立되고, 상대세계의 사물이 成立되면 그것은 또 파괴된다.

따라서 모든 사물은 성립과 파괴를 막론하고 에 의해다시 통해서 하나가 된다.

오직 통달한 사람이라야만 해서 하나가 됨을 안다.

이 때문에 인간 세계의 습관이나 偏見편견을쓰지 않고, (常住不變상주불변의 自然자연)에 맡긴다.

庸용이란 作用작용이고, 작용이란 通통함이고 통함은 自得자득함이니 자득의 경지에 나아가게 되면 道에 가깝다.

絶對절대의 시에 말미암을 따름이니 그렇게 할 뿐이고 그러한 까닭을 알지 못하는 것을 라고 한다.

神明신명을 괴롭혀서 억지로 이 되려고만 하고 그것이 본래 같음을 알지 못하는 것을 朝三조삼이라 한다.

무엇을 朝三조삼이라 하는가.

狙公저공이 도토리를 원숭이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 주겠다.”고 하자

원숭이들이 모두 성을 냈다.

그래서 다시, “그렇다면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 주겠다.”고 하자

원숭이들이 모두 기뻐하였다고 한다.

하루에 일곱 개라는 名과 實이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도 기뻐하고 노여워하는 마음이 작용하였으니 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면또한 절대의 를 따라야 할 것이다.

이 때문에 聖人是非를 조화해서 天鈞천균에서 편안히 쉰다.

이것을 일컬어 兩行우행이라 한다.

옛사람들은 그 지혜가 지극한 곳까지 이르렀다.

어디에까지 이르렀는가.

처음에 사물이 아직 없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으니 지극하고 극진하여 이보다 더 나을 수 없다.

그 다음은 사물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 구별은 없다고 생각했으며, 그 다음은 사물과 사물의 구별은 있지만 아직 는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시비가 나타나는 것은 도가 무너지는 까닭이고 道가 무너지는 것은 사사로운 사랑이 생성되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과연 성립과 파탄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성립과 파탄이 없는 것인가.

성립[]과 파탄[]이 있는 것은 저 昭氏소씨가 거문고를 연주하는 것과 같고 성립과 파탄이 없는 것은 저 昭氏가 거문고를 연주하지 않는 것과 같다.

昭文소문이 거문고를 연주하고, 師曠사광이 琴柱금주를 조절하여 조율하고, 惠施혜시가 오동나무 책상에 기대어 변론함에 그들 세 선생의 才知재지는 거의 완성의 지경에 가까웠는지라 모두 자기 분야의 완성자였다.

그래서 후세에 그 이름이 실려 있다.

그러나 그들이 그것을 좋아한 것은 저 의 경지와는 다른 것이었다.

그들은 그것을 좋아함으로써 의 경지를 밝히고자 하였다.

는 밝힐 수 있는 것이 아닌데 밝히려 하였다.

그 때문에 惠施혜시는堅白論견백론 같은 詭辯궤변을 일삼는 愚昧우매함으로 몸을 마쳤는데, 昭文소문은그 아들 또한 아버지 昭文소문의 거문고 연주 기술만으로 그쳐 종신토록 를 이룸이 없었다.

이와 같이 하고서 를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다면 비록 우리 凡人범인들 또한 도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하고서 도를 이루었다고 말할 수 없다면 저들 세 사람[]과 우리 범인들 모두 를 이룸이 없는 것이다.

그 때문에 희미한 가운데 감추어져 있는 그윽한 빛은 聖人이 추구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성인은 자신의 사사로운 지혜를 쓰지 않고 불변의 自然에 맡긴다.

이것을 일컬어 明晳한 지혜로 밝힌다고 하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 어떤 말이 있다.

그런데 이 말이 진리와 類似유사한지 진리와 유사하지 않은지 알지 못한다.

유사한 것과 유사하지 않은 것을 서로 유사한 것으로 간주하면 저것(비진리)과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비록 그렇지만 시험삼아 한 번 말해 보고자 한다.

처음[]이라는 말이 있으며, 처음에 처음이라는 말이 아직 있지 않았다[無始]는 말이 있으며, 처음에 ‘처음에 처음이라는 말이 아직 있지 않았다’는 말도 아직 있지 않았다[無無始]는 말이 있다.

라는 말이 있으며, 라는 말이 있으며, 처음에 라는 말이 아직 있지 않았다는 말[無無]이 있으며, 처음에 처음에 라는 말이 아직 있지 않았다는 말이 아직 있지 않았다는 말[無無無]이 있다.

이처럼 言語表現언어표현이 생기자이윽고 가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아직 알지 못하겠다.

중에서 과연 어느 것이 있고 어느 것이 없는 것인지를.

이제 내가 이미 말함이 있는데 아직 알지 못하겠다.

내가 말한 것이 과연 말함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과연 말함이 없는 것인가.

天下에는 가을털의 끝보다 큰 것이 없고 태산은 가장 작다.

일찍 죽은 아이보다 長壽한 사람이 없고 8백 년을 살았다고 하는 彭祖팽조는 가장 일찍 죽은 것이다.

〈萬物齊同만물제동의 世界세계에서는〉 天地도 나와 나란히 生하고 萬物도 나와 하나이다.

이미 하나가 되었다면 또 무슨 말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미 하나[]’라고 말하였다면 또 말이 없을 수 있을 것인가.

과 말이 가 되고 이 된다.

이로부터 이후로는 아무리 曆法역법에 뛰어난 사람이라도 계산해 낼 수 없을 터인데, 하물며 보통사람이겠는가.

그 때문에 로부터 로 나아가도 이 됨에 이르니, 하물며 로부터 로 나아감이겠는가.

나아가지 말아야 할 것이니 절대의 (自然)를 따를 뿐이다.

Posted by 최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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