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는 많이 보고 듣는 간접경험으로 스스로 구하고 생각하며 길을 찾는다. 주역

04-2. 彖辭(단사) 彖曰(단왈) ()山下有險(산하유험)하고 險而止(험이지) ()이라

彖曰(단왈) () 아래에 ()이 있고, ()한데 그치니 이것이 ()이라

 

蒙亨(몽형)以亨行(이형행)이니 時中也(시중야)

()亨通(형통)하다는 것은 亨通(형통)함으로 ()하기 때문이니, 그 때가 가운데 있는 것이오

 

匪我求童蒙(비아구동몽) 童蒙求我(동몽구아)志應也(지응야)

내가 童蒙(동몽)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童蒙(동몽)이 내게 ()하는 것이니, 이것은 뜻이 ()한 것이오.

 

初筮告(초서고)以剛中也(이강중야)-再三瀆瀆則不告(재삼독독칙불고)瀆蒙也(독몽야)일새니

初筮告(초서곡)剛中으로써, 再三瀆瀆則不告(재삼독독즉불곡)은 어린 아이를 더럽히는 것이다.

 

蒙以養正(몽이양정)聖功也(성공야)

()을 바르게 기르는 것은 聖君(성군)이 되는 것이라.

 

 

뜻 지’, 意也, 기록할(記也)

응할 응’, 응당(當也)

기를 양’, 育也, 다스릴(治也)

성인 성’, 천자

공 공

 

彖辭(단사)四節(사절)로 되어 있다. 第一節(제일절)은 순수하고 깨끗한 동몽은 반드시 크게 성장하고 발전한다는 것이고, 第二節(제이절)은 학생이 선생에게 가르침을 요구할 것이지 선생이 학생을 권유하여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학생이 공부할 뜻을 가진 후에 비로소 스승은 이를 가르친다. 第三節(제삼절)은 학생이 진심으로 가르침을 원할 때에 비로소 가르친다. 그렇지 않으면 ()를 모독하고, 스승을 모독하고, 자신을 모독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가르치지 않는다. 第四節(제사절)은 학생이나 스승이 모두 바른 길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彖曰(단왈) ()山下有險(산하유험)하고 險而止蒙(험이지몽)이라”, 蒙卦(몽괘)上卦(상괘)艮卦(간괘) ()이고, 下卦(하괘)坎卦(감괘) 물이다. 산 아래에 험난한 물이 있으니 건널 수가 없다. 건너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준비가 필요하다. 이것이 蒙卦(몽괘)()이다. 下卦(하괘) ()의 성질은 ()이다. 上卦(상괘) 艮卦(간괘)의 성질은 ()이다. 蒙卦(몽괘)險難(험난)으로 쉽게 건널 수 없는 곳에 와서 나아가지 못하고 머물러 있다. 즉 훌륭한 스승을 만나 그의 가르침을 받고 道德才能(도덕재능)을 길러서 險難(험난)을 건너서 나아갈 준비를 한다.

 

蒙亨(몽형)以亨行(이형행)이니 時中也(시중야)”, 來知德(래지덕)以亨(이형)以我亨通(이아형통)이라하여 내가 먼저 알고 앞서 깨달은 그것으로써 童蒙(동몽)을 가르친다. 時中(시중)은 때에 알맞은 것으로 그 때에 꼭 알맞은 過不足(과부족)이 없는 올바른 가르침이다. ()亨通(형통)하는 것은 스승이 적당한 ()로써 학생을 가르치고 지도하기 때문이다. 童蒙(동몽)이 크게 亨通(형통)하는 것은 선생이 적당한 가르침으로 잘 지도하기 때문이다.

 

匪我求童蒙(비아구동몽) 童蒙求我(동몽구아)志應也(지행야)”. 학생이 선생의 가르침으로 크게 성장하는데, 그 가르침은 先行(선행)해서 구해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학생이 진심으로 구할 때 비로소 가르치는 것이다. 이것은 선생의 뜻과 학생의 뜻이 서로 꼭 맞기 때문이다. ()로써 말하면, 九二(구이)(), 즉 스승이고, 六五(육오)는 가르침을 받을 학생이다. 六五(육오)九二(구이)가 서로 ()하고 있음으로 교육이 잘된다.

 

初筮告(초서곡)以剛中也(이강중야)再三(재삼)이면 瀆則不告(독즉불곡)瀆蒙也(독몽야)”, ()고할 곡자로 읽는다. 六五(육오) 童蒙(동몽)九二(구이) 스승에 대하여 순수한 진심으로 ()를 배우려한다. 그러므로 九二(구이)가 가르친다. 九二(구이)剛中(강중)()을 가지며, 六五(육오)()을 얻고 있으며 서로 ()한다. 九二(구이)剛中(강중)()을 가짐으로 가르칠만한 사람에게 적당한 가르침을 준다. 가르칠 수 없는 사람을 가르쳐서 ()를 모독하고, 자신을 모독하고 학생을 모독하는 일은 없다.

 

再三(재삼)이면 瀆則不告(독즉불곡)瀆蒙也(독몽야)”, 처음 가르침을 받고, 스승의 말을 의심하고, 재삼 묻고 또 의심을 가지고 그 ()를 모독하는 사람임으로 가르치지 않는다. 만약 그런 사람을 가르치면 ()를 모독하고 자신을 모독할 뿐 아니라, 가르침을 받는 학생까지도 모독하게 된다. 뒷날 학생이 ()를 가볍게 보고 선생을 업신여기고 희롱하게 된다. 再三瀆(재삼독)六三(육삼)이 가르침을 받을 수 없는 못된 학생인데, 六四(육사)도 또 ()를 모독할 학생이라는 말이다.

 

蒙以養正(몽이양정)聖功也(성공야)”, 이것은 彖辭(단사)利貞(리정)을 설명한 글이다. 학생은 반듯이 바른 길로 가르쳐야 한다. 어릴 때에 바른 길을 가르쳐서 바른 ()을 기르도록 하고, 학생도 바른 교육을 받고 바른 ()을 기르도록 하는 것은 뒷날 聖人(성인), 成君(성군)이 될 수 있는 공부()가 되기 때문이다. 선생과 학생은 반듯이 바른 길로 배우고 가르치고 해야 한다.

 

彖辭(단사)彖傳(단전)에서는 선생과 학생이 서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는데, 자기 자신이 선생이 되고 학생이 되는 경우도 있다. 스스로 순수한 진심으로 ()를 구하며 순수한 진심이 자신을 가르친다.

 

 

彖傳(단전): ()山下有險(산하유험)險而止(험이지)()蒙亨(몽형)以亨行時中也(이형행시중야)匪我求童蒙(비아구동몽)童蒙求我(동몽구아)志應也(지응야)初噬告(초서고)以剛中也(이강중야)再三瀆(재삼독)瀆則不告(독칙불고)瀆蒙也(독몽야)蒙以養正(몽이양정)聖功也(성공야)

Tuan Zhuan:

In Meng we have (the trigram for) a mountain, and below it that of a rugged defile with a stream in it. The conditions of peril and arrest of progress (suggested by these) give (the idea in) Meng. 'Meng indicates that there will be progress and success:' - for there is development at work in it, and its time of action is exactly what is right. 'I do not seek the youthful and inexperienced; he seeks me:' - so does will respond to will. 'When he shows (the sincerity that marks) the first recourse to divination, I instruct him:' - for possessing the qualities of the undivided line and being in the central place, (the subject of the second line thus speaks). 'A second and third application create annoyance, and I do not instruct so as to create annoyance:' - annoyance (he means) to the ignorant. (The method of dealing with) the young and ignorant is to nourish the correct (nature belonging to them); - this accomplishes the service of the sage.

Posted by 최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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